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장기용 사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기도주간(11월 7일-13일)을 맞아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비정규직 제도는 사람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제도이기에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3일의 소리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우리의 입장 –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26-27)
일어나선 안 될 참사가 또다시 발생한데 대해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하며, 10월 29일 참사 희생자들 위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또한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기도주간”을 맞아 비정규직 제도는 사람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제도이기에 반드시 철폐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아래와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는 사회적 갈등과 이해충돌을 조정함으로써 구성원들의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 그 본뜻이 있다. 따라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와 협의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윤석열 정부 시대에 정치가 과연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권위적인 방식을 고수하여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수도권이 물에 잠기고, 오래 전부터 계획된 대규모 행사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을 때에도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희생양을 찾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사라지고 악한 통치와 참사만이 남았다.
우리는 1년 365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노동현장에서의 참사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마땅히 작동해야 할 안전장치는 멈춰있으며, 마땅히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은 생산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무시되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통제하고 규제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자본을 편들면서 노동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2022년 상반기에만 무려 1,142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무를 다하던 이웃의 참담한 죽음을 의미한다.
52년 전, 전태일 열사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삼권을 국가가 앞장서서 무시하는 불의한 현실을 폭로하며 자신을 불살랐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매일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뒤로 한 채 이윤창출만을 바라보며 죽음의 낭떠러지로 내달리고 있다. 한국교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기도주간을 맞아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최선을 다하기를 촉구하며,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하나,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지금 당장 온전히 적용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어렵사리 제정되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를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라 평가하고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기업이 남길 이윤만을 중히 여기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윤석열 정부는 5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유예조치를 철회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에 지금 당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기본 책무를 다하라.
하나,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법 2,3조를 즉시 개정하라. 노동삼권은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이다. 이를 무력화하고 노동자를 사지로 모는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하며, 원청의 사용자성을 법제화하여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원청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의 “이대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는 절규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겪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수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울려 결국 합의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마주한 것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에 대한 무시무시한 협박이다. 교섭과정에서는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던 대우조선해양은 합의에 이르자 손배소 등을 언급하며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노동자의 인간 존엄을 짓밟고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이러한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노동삼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노조법 2,3조의 개정을 촉구한다.
하나,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대화와 협의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참된 민주주의는 일방적인 도어 스테핑이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회적 대화와 협의에 적극 나섬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대통령실 이전부터 기후위기 대응, 부동산 대책, 복지예산 삭감 등에서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도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일방통행을 계속한다면 전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고 소명이며 축복이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하는 노동자의 외침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모든 이들에게 차별없이 일용할 양식을 베풀어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최우선이 되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여정 가운데 시민사회와 늘 함께 할 것이다.
예견되었지만 막아내지 못한 참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거듭 기원한다.
2022년 11월 1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 의 평 화 위 원 회
위 원 장 장 기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