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시국행동추진위원회 시국선언문
“그는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그들을 외면하지도 않으신다. 부르짖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응답하여 주신다. 가난한 사람들도 “여러분들의 마음이 늘 유쾌하길 빕니다!” 하면서 축배를 들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 시편 22편 24, 26
우리 사회 곳곳이 탄원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러니 듣지 않으려 해도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온종일 외치기 때문이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2022년 6월 22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유최안은 가로·세로·높이 일 미터 구조물에 자유를 포기한 채 스스로를 가뒀다. 한 뼘 사이 손 내밀어 보인 피켓 한 장에 적혀있는 그 말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빼앗긴 임금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절박한 외침에 중재는커녕 불법을 운운하며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몰던 임기 2개월 차 대통령은 계속해서 노동혐오에 기대어 비루한 지지율을 유지하려했다. 사라졌어야 할 공안탄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검찰과 경찰 권력은 칼날의 손잡이가 되더니 이제는 대놓고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옥죄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그 칼끝에 우리는 건설노동자 양회동 열사를 잃어야 했다.
과거 독재자들은 무소불위한 폭력의 법적 근거를 국가보안법에서 찾았다. 우리는 이 법이 정권 반대세력을 제거하는데 악용하는 전근대적 악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국민을 섬기고 보위할 책임을 방기한 채 국민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세력은 주로 정권말기에 이 법을 휘둘러 무고한 이들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겼다. 그러나 현 정권은 집권초기에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민주운동진영에 마구잡이 압수수색을 자행하고 이미 10명을 구속했다.
대선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하던 윤석열 대통령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명백히 존재하는 혐오와 불평등을 없는 셈 치기로 했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의 폭력이 규제 없이 날뛰고 있다. 차별을 묵인하고, 소수자를 희생시키겠다는 정부의 암묵적 부추김이 곳곳의 견고한 차별의 벽을 높이고 있다. 광장의 퀴어문화축제는 금지당했으며 교과서에서는 성평등이 지워졌다. 이동권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정당한 시위에는 수억 손해배상으로 대답했다.
2023년 5월 8일, 양천구 전세사기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다. 네 번째 희생자였다. 전세사기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일을 늘려 밤낮없이 일하던 성실한 그이는 과로 끝에 마음 편히 쉬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다. 시장 자유를 말하며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정부는, 동시에 가난한 이들이 누려야 할 주거의 자유는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소유만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종용하는 세상에서 평범한 이들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특별법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대답했다. “사기피해는 구제할 수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2022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대통령은 ‘자유’를 외쳤다. 35번의 자유를 외쳤다. 노동자를 해고할 자유, 소수자를 혐오할 자유, 사회 주류의 규격에 맞지 않는 이들을 낙오시킬 자유를 외쳤다. 이제 그 자유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그 자유는 당면한 기후위기 속 탄소중립 정책을 뒤집을 자유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들의 정당한 불안을 묵살하며 탈원전 기조를 해체할 자유로, 대결구도 속 전쟁위기를 조장하며 북의 자매형제를 혐오할 자유, 이 모든 무지와 폭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틀어막을 대통령과 그를 옹호하는 기득권의 자유로 귀결됐다.
우리는 대통령이 말한 자유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자유인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비단 그 개인의 호불호 문제가 아닌, 지난 역사 속 민중의 삶을 끈질기게 괴롭혀온 기득권과 그 기득권의 뿌리인 체제에서 비롯된 낡은 구호로서의 자유임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진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성경을 진리라고 고백한다. 오늘 우리에게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세상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그러니 우리 기독인들은 이 실체 없는 자유 속, 바닥없이 퇴보하는 사회 곳곳의 신음하는 목소리로 선언한다. 온종일 외치는 거리 곳곳의 목소리로, 포기할 수 없는 벼랑 끝 일상에서의 울부짖음으로 선언한다. 하나님은 그 모든 목소리 중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으신다.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하는 미세한 신음까지도 하나님은 이미 듣고 계시며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누구보다 비통한 심정으로 작금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 한다.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과 같은 시선을 가지고 광장에 나서려 한다.
가난한 사람이 축배를 들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요구한다. 거짓 자유가 판을 치고 폭력과 각자도생이 권장되는 세상이 아닌 연대와 평화의 가치가 존중받는 세상을 요구한다. 그 모든 일에 앞서 거짓 자유의 하수인인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목소리를 외면치 않으신다.
2023년 7월 7일
기독교시국행동추진위원회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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