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첫 번째 묵상 말씀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 중 첫 번째
누가복음 23장 34절(새한글)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말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위한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을 선고받는 자들은 보통 반역죄, 흉악범죄, 노예의 반란 등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 자처했다는 이유로, 즉 반역죄인의 혐의를 받아 십자가를 지게 되셨습니다.
십자가형은 극도의 고통을 가할 뿐 아니라, 벌거벗겨진 채로 온몸이 드러나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되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에게는 절대 적용되지 않는 형벌이었으며, 유대인의 율법이 아니라 로마의 법에 의해 시행되는, 본보기용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즉, “로마(또는 로마 시민)에게 함부로 대들면 이렇게 죽는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이었습니다.
비록 형벌은 로마의 법이었지만,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요구한 것은 유대의 지도자들과 군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소리쳤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매다십시오! 십자가에 매다십시오!” (눅 23:21)
십자가형은 단순히 나무에 매다는 것이 아니라, 채찍질로 시작됩니다.
납이나 뼛조각이 달린 가죽 채찍으로 온몸을 때려 피부와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을 줍니다. 이는 형을 가볍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에 더해, 조롱의 표시로 가시로 만든 왕관을 쓰셨습니다. 그 날카로운 가시는 머릿속 두개골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자신이 달릴 십자가의 가로목을 지고 형장까지 행진하셨습니다. 이는 수치와 모욕을 극대화하기 위한 로마의 방식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로마에 반역하면 이렇게 된다”는 공포심을 심어주는 의도였습니다.
형장에 도착하면, 죄수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공개적인 장소에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죄수의 옷은 벗겨지고, 손과 발에 못을 박거나 가죽끈으로 묶어 고정합니다. 그리고 머리 위에는 그가 범한 죄를 적은 죄목 팻말이 달립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질식, 탈수, 출혈, 심장마비 등의 원인으로, 수 시간에서 수일에 걸쳐 서서히 생명이 꺼져갑니다. 보통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스스로를 저주하거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분노를 퍼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첫 번째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말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와 같은 극심한 고통 속에 있었다면 어떤 감정과 말들이 흘러나왔을지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적 반응을 넘어서, 한없이 크고도 따뜻한 용서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의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 각자의 삶에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다양한 상처와 아픔, 고난 속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분노와 슬픔에 잠기기도 하고,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남기신 이 용서의 메시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사랑과 용서를 피워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그 한 마디를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서로를 용서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관대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우리 안에 피어나는 따뜻한 용서와 사랑의 불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우리의 내일을 환하게 밝혀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