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달리시면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 중 여섯 번째
요한복음 19장 30절(새한글)
“끝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 “끝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는 단순히 한 사람의 생애가 마무리되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과, 그 순종을 통해 이루어진 구속 사역의 완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문화 속에는 유교적 세계관의 영향이 깊게 배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가치관이 바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이 표현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사고와 삶의 자세를 형성해 왔습니다. 이 말에는 책임감과 성실함이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만, 동시에 결과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체념, 또는 수동적인 순응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끝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는 말씀은 전혀 다른 차원의 선언입니다. 헬라어로 ‘테텔레스타이(τετέλεσται)’라는 이 표현은 고대 경제 문서에서 사용되던 말로, ‘빚이 완전히 갚아졌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단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전체를 완성하셨다는 능동적이고 결정적인 선포입니다. 더 이상 추가할 것도, 더할 것도 없이 완전하게 끝마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지와 계획이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은혜의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자세는 인간적으로 매우 성실하고 겸손한 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 삶의 결과가 단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끝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라는 말씀은 우리의 인생과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구원에 순종하며 동참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순종하며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뜻에 나를 맡기고 도구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내가 무엇을 얼마나 이뤘는지를 계산하기보다, 하나님의 뜻 앞에 얼마나 순종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끝까지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마침표인 동시에, 우리 삶의 참된 출발점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완성된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