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토요일에 외할머니의 동생이신 외삼촌 할아버지(외외종할아버지)의 소천이 있으셨습니다.
삼촌할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일년에 꼭 한 번 정도는 찾아 뵙고 안부인사를 하던 분이셨는데, 몇 년 전부터 당뇨로 인해서 급속히 몸이 악화가 되셨다가 지난 주 토요일이 시작되는 자정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만석성결교회 명예장로셨고, 4명의 자녀를 두셨습니다. 왕래를 자주하지 않았으나, 어른 사이에서 계속 연락하고 지내셨습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인사했던 분이시라, 장례 삼일동안 참석하고 마지막에는 인천가족공원과 납골당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외가 쪽 가족들이 모여서 장례를 진행하니, 오랜만에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장례를 끝까지 치루는데, 제가 역할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모교회 담임목사님이 발인예배는 드리셨는데, 아쉽게도, 당일 건강검진으로 인해서 화장장까지 못오시는 일이 발생되었습니다.
집례를 해 주셔야 할 담임목사님 안계시니, 이리저리 당황스런 일들이 계속 연출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가 구원투수가 되어 나머지 장례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목사의 본분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운구앞에 서는 일부터 시작해서 화장, 수골, 납골 그리고 마지막
으로 가족들 모임까지 장례의 마무리를 지어 들릴 수 있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제가 가족들을 섬기는 목회자로서의 자리에 서서 집례하면서 그 동안 삼촌할아버지께서 우리 가족과 제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계기가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가족이라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핏줄에 대해서 잘모르고 지내오다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함께 돕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인 것을 알게 되는 계기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는 한 다리를 건너가고, 외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가족인지도 모를 정도로 왕래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애매한 지점이 있기도 합니다.
거의 남처럼 지내다가 무슨 일이 있을 때에 만나게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근본이 어디에서 왔다는 사실을 계속 잊고 싶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의 어떤 지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마무리를 다하고, 인천가족공원의 납골당에 계신 아버지와 둘째 작은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꽃사지를 사서, 각각 놓여드리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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