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룻 4장 6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룻과 약속을 한 보아스는 룻과 헤어진 다음 곧장 성문 위 회관으로 올라가서 앉았습니다. 그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룻의 기업을 책임질 첫 번 째 순서인 친족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룻은 그를 불러 자신의 자리에 초대하며 말합니다. 그리고는 마을의 열명의 장로들을 초대하여 증인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니다.
”친족 엘리멕덱의 밭을 내놓았는데 그 밭을 가장 가까운 친족이 사야 합니다. 그리고 집안 간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만약에 책임을 지겠다면 당신이 사시고, 그렇지 않다면 제가 사겠습니다. 당신이 첫 번째 순위고 그 다음 순위가 저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순위의 친족은 냉큼 자신이 사겠다고 말합니다.
그 때, 보아스가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로, 고인의 아내인 모압 여인 룻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그가 물려받은 그 유산이 고인의 이름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첫 번 째 순위의 친족은 그 순간 오히려 자신이 재산상의 불이익이 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엘리메덱의 밭은 그렇게 크지 않는데, 그 집 식구 둘 즉, 나오미와 룻을 책임지는 것은 오히려 손해 보는 일이 될 것이라는 판단 순식간에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손해입니다. 저는 포기할테니, 그 다음 친족인 보아스 당신이 그들을 책임지시오.“
보아스는 그 말에 주변사람들 앞에서 공증을 하며, 그 밭과 나오미, 룻을 책임지는 자리를 물려 받습니다.
사람들은 이익이 되는 것에 냉큼 가지려고 하지만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손해가 되는 것을 더더욱 싫어합니다. 누군가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좋아하나 의무를 책임을 더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손해인 것을 감수하고 책임을 져 주는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장 34절)
의무로 여기지 않고, 손해 볼 것을 염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함께 해 주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손해가 될 수 있으나, 사랑으로 하는 의무는 그 결실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입장으로 볼 때 자기 십자가를 메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완벽히 손해 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손해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결실이 심히 큰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 당신을 의무로서 책임져 주신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십니까? 당신의 삶 가운데 손해를 볼 수 있지만, 사랑으로 감싸주고 책임져 줄 이들은 누가 있으십니까? 당신은 기꺼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으십니까?
(사순절 30분의 시간동안 깊이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