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는 18세기를 살았던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성공회 신부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경건한 성공회 신부로 평생을 살아왔으나, 성공회 신부로서 미국 조지아의 원주민을 대상으로 선교를 진행하다가 크게 실패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면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큰 폭풍이 치자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다가 실패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음을 알게 되며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는 모라비안 성직자인 페터 뵐러 목사와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해서 믿음의 자리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되었고,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 거리에 있는 네트턴 코트에서 모이는 모라비안 교도의 기도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듣는다.

‘”그러므로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며 성령으로 외적인 선한 사역을 기뻐한다면, 불신앙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대로 낙원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그랬듯이 죄를 짓게 하고 육체를 낳으며, 외적인 악한 사역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6장 8-9절에 “그분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고 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불신앙은 모든 죄의 뿌리요, 수액이며, 최고의 기도이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 순간 그는 무엇인가 마음을 해소하고 따뜻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존 웨슬리의 중생체험이었고, 회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ly warmed). 나는 내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으며,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믿고 있음과, 내 죄를 아니 내 죄까지를 다 거두어 가시고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 후, 웨슬리는 메소디스트 운동(감리교 운동)을 펼치게 된다. 이러한 운동은 영국성공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에는 웨슬리를 직무파면을 당하였다. 더 이상 성공회 소속 목사로서 목회를 할 수 없게 된 웨슬리는 자신이 이룬 감리교 운동이었던 감리교회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전도생활 50년동안 말을 타고 지구 10바퀴이상 거리를 다니며 4만번 이상의 설교를 하였다. 그의 설교는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병들었던 영국사회를 변화시켰다. 그의 이러한 감리교 운동은 그를 따랐던 수 많은 이들의 삶에 변화를 주었다.

교도소의 개혁, 교육제도 확립, 노예해방, 노동자해방과 어린이 보호, 해외선교운동고취 시켰다.

그래서, 웨슬리의 회심으로 촉발된 감리교 운동은 다른 종교개혁과는 달랐다. 감리교 운동은 개인과 사회가 같이 성화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회심이 사회 변혁으로 이끌어 가는 것에 큰 매력이 있는 것이 바로 감리교회이다.

감리교회는 단순히 개인의 변화에만 중점을 두지 않는다. 한 개인의 변화가 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놀라운 가능성에 감리교회는 염두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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