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이 왔다.““저는 지나가던 청년인데, 교회 현수막을 보고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잠시 연락드렸습니다. 교회 사역자인이신가요?”
“네, 담임목사입니다.”
“현수막 문구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교회 현수막하고는 많이 달랐어요. 많이 감명이 깊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고, 멀어서 못가지만, 힘을 받습니다.”
현수막 문구는 이랬다.
‘일상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고, 사랑에 다쳐도 당신은 늘 하나님 안에서 빛나야 합니다. 무지개감리교회’
더운 여름이라 전도를 하지는 못하고 김포시 지정게시판을 통해서 현수막을 달았는데, 연락 온 청년이었다.
사실, 재정이 너무 소모가 되어서 다시 못할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기뻤다.

요근래, 세계잼버리대회로 시끌시끌하다. 전북 새만금에서 진행하는 잼버리대회에 전세계 43000명의 청소년들과 지도자들이 참석하는데, 간척 개활지임에도 불구하고, 배수 시설, 폭염대비 등,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니, 수많은 청소년들이 일사병 증세와 코로나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벌써 중요한 영국, 미국의 스카우트들은 다른 일정으로 대체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정부의 중요한 관계 장관들이 잼버리 대회가 있기 전에 현장을 보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잼버리 대회 이상 무’를 외쳤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수돗물을 보고 ‘온수네!’, 책임자인 여성가족부 장관은 벌써 몇 개월 전부터 이렇게 개최하면 큰일 나니 신경써 달라고 한 말을 ‘네’ 소리와 함께 신경을 꺼버렸다.
이렇게까지 경고하고 현장이 문제가 있음을 보았을 텐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지금 일처리가 되어가는 곳을 본다.
왜 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 보기 보다는 내 위치만을 올라가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이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험들은 많이 하게 된다. 목회자들은 보통 공감능력이 풍부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사실은 아니다. 공감능력이 좋은 목회자, 공감능력이 부족한 목회자들을 많이 보았다. 내 경우에는 과공감하는 경우들이 많아 조금 문제가 되는 목회자에 속하였다.
부목사 좋은 경험들이 있었다. 큰 교회 부목들은 예배가 끝나면 담임목사님과 함께 도열하였다. 그리고, 남성 성도들과 안수를 나누었다. 그러면 많은 남성 성도들의 손을 접촉하게 된다. 거친 손, 부드러운 손, 상처입은 손, 때론 조막손까지…. 손을 접촉하고, 얼굴을 보면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된다.
많은 감리교 목회자들은 사실 손이 사무직처럼 부드러운 손이 많다. 그 중에 나도 하나였다. 그러나, 성도들의 손을 만져 볼 때면 성도들의 삶이 느껴져 때로는 괴롭기도 했다.
그래서, 무지개교회를 개척을 위해 준비하던 두 달간 대리운전을 경험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삶과 목회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에게 공감능력을 향상 시켰다. 그러한 결과물들이 바로 미션카선교회, 장난감선교회, 우리동네참재밌다 같은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공감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목회할 인가?는 공감을 다시 회복하는 자리에 서야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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