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이태원에서 할로윈 축제를 참여하기 위해서 수많은 인파가 이태원을 들어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조치로 신나게 놀지 못했던 수많은 청춘들은 몰려나왔고, 이태원의 좁은 골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한 걸음도 자신의 뜻대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자 현장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문제를 느끼고, 경찰과 소방서, 용산구청에 전화하면서 통제를 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찰들은 오지 않았고, 통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사람이 좁은 골목에서 넘어지자 뒷 사람들도 인파에 밀려 넘어졌습니다. 좁은 골목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깔려서 숨을 못쉬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축제를 즐겼고, 뒤늦게 경찰들이 와서 통제선을 치고, 소방관이 와서 심폐소생술을 하여도, 한 번 무너진 공공질서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태원에 몰려든 사람들은 경찰과 소방의 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모른채 신나는 음악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과 살기 위해 벽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 비명소리들의 혼잡함은 세기말 현상을 연상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59명의 젊은 인생이 하늘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어떤 사람도 책임을지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죽은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하며, 책임을 떠넘기며, 어떤 이들은 그렇게 죽은 이들을 조롱했습니다.
한국교회도 그들을 외면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그들을 추모하였지만, 또 반대편의 많은 교회는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태원에서 아들을 잃은 두 권사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수적 장로교회를 다녔다는 어머니는 말이 마음이 와 닿았습니다.
“저는 보수적인 장로교회를 다닌다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해 왔어요. 주변에 다른 교단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많이 있는데, 신앙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게 되면 “우리는 말씀 중심이야. 너희와는 비교가 안 돼“라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사랑하던 교회에서 저의 아픔을 외면했어요. 교인들은 저에 대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라고 잠시 생각하고는 바로 잊어버리더라고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TV 뉴스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저와 상관없는 일이고, 교회를 다니는 우리 가족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피해자 입장이 되고 보니까 ‘이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출처: 뉴스앤조이] 이태원 참사로 아들 잃은 권사, 교회는 한 번도 분향소에 오지 않았다
참사 이후 며칠이 지난 후에 그 현장에 국화꽃 한송이를 놓았습니다. 추모의 현장에도 잠시 들렸습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을 위한 아픔을 조금이나마 같이 나누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큰 참사가 있을 때에 언제나 트라우마가 남습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 세월호의 아이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뿐만 아니라, 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죽음과 참사, 아픔, 애통과 슬픔 앞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마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오늘 아픔을 당한 이들을 위해 같이 아파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