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하나님의 계획과 내 의지가 만나는 그곳,

그리고 사탄의 속임이 있는 그 순간

 

대림절 3주 3일차

제목: 고엘(풀려나게 할 자)

[레위기 25:47-48] – 새번역

47 너희와 함께 사는, 나그네 신세 된 외국 사람이나 임시 거주자 가운데는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데, 마침 그 이웃에 너희의 동족이 살고 있다가 가난하게 되어서, 그 외국 사람에게나, 너희와 같이 사는 임시 거주자에게나, 그 가족 가운데 누구에게, 종으로 팔렸다고 하자.

48 종으로 팔려 간 다음이라 하더라도, 그는 종으로 팔릴 때에 받은 값을 되돌려 주고 풀려 날 권리가 있다. 그의 친척 가운데 누군가가 값을 대신 치르고 그를 데려올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에게는 가난하게 되어 동족이 아닌 외국인이나 거류자들에게 팔리게 되는 일들이 있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속량(풀려날) 권리가 주어지게 됩니다.

원어에서는 ‘그엘라’ 라고 하며, ‘가알(물어준다)’에서 나오는 파생된 단어입니다. 반대로, 물어주는 사람은 ‘고엘’이라는 불렀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의무를 지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이 절대빈곤의 상태로 떨어질 때,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할 의무를 가까운 친족이 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동체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관계로 룻과 보아스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가까운 친척으로서 기업의 의무를 질 자로서 룻과 혼인하였습니다. 그 혼인으로 인해 그들의 후손으로 다윗이 나왔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안전망이 작동할 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삶은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게도 하지만, 때로는 빈곤한 상태를 당신을 끌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최고의 방점을 찍어도 내일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는게 오늘 당신의 모습입니다.

 

그럴 때, 당신을 존엄을 지켜 줄 이는 누구입니까? 당신을 지켜줄 이가 없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고엘(속량할 자)이 되기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안전을 위해서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으나, 원하던 것을 지켜내기 위해 더 많이 요구하고, 더 쟁취하려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 스스로 자신의 고엘이 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당신을 구할 고엘로 이미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자신의 생명으로 당신을 구원하셨고, 영원한 것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당신이 지금 해야 할 것은 그것을 믿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조건 없이 내어준 그 사랑으로 믿는 것만이 당신이 가진 절망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는 고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모이게 된 이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버팀목으로서 서로를 위로하고 섬기는 자리에 기꺼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교회가 그러한 믿음으로 함께하는 교회이길 기원합니다.

 

무지개 뜨는 땅에서 이주헌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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