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기억해 주세요’
 
지난 주 2박 3일동안 천안에서 청소년지도사 2급 국가자격과정 연수가 있었습니다. 3일동안 참여하면서 많은 예비 청소년지도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전에 부고 문자가 2개 왔습니다. 한 곳은 전북 완주에 계신 선배 목사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문자였고, 또 하나는 인천에 있는 한 살 어린 후배 목사가 갑자기 돌아갔다는 문자였습니다.
그 문자를 보고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한창인 친구이기도 했고, 저와 가까운 또래의 첫 죽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천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격연수 과정을 끝나자마자 완주에 가서 선배 목사님의 아버님의 장례조문을 하고 다시 올라가니 오후 7시 가까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으로 올라가니 후배 박승남 목사의 얼굴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사모님과 딸 아이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통하고 가슴이 저미어왔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박승남 목사는 제 송고등학교 1년 후배였습니다. 2학년일 때 송도고 기독학생반 회장으로 있으면서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년 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있었으나, 사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후에 20여년 동안 만남이 없었습니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죠.
 
박승남 목사는 청소년 사역자가 되어 있었고, 송도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학교 채플을 이끌었습니다.
기독교 전통의 송도고등학교는 재단이 모회사로 넘어가는 바람에 명맥이 끊기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박승남 목사가 그 명맥이 끊기지 않게 붙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학교를 사랑하며, 봉사하자.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는 이들이 생겼고, 교사들을 설득하자, 채플에 같이 하는 청소년 아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특별한 무엇인가를 원하지 않고,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가면서 사랑으로 모교와 모교의 기독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가는 그의 모습은 참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송도고등학교 출신 목회자 동문들의 작은 후원도 이끌어 낼 수 있었고, 특별한 절기에 선배들을 초청해 같이 예배드릴 때는 소강당이 가득 차게 아이들이 왔습니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라는 찬송이 참 잘 어울리는 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목회자였습니다. 비록, 가지고 있던 지병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잠자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만, 주님 품으로 들어간 박목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실까요.
비록 그가 50이라는 나이도 차지 못하고 주님 품에 안기었으나, 그는 분명, 수많은 복음의 씨를 뿌린 사람이었습니다.
유가족인 사모님과 자녀에게 하늘위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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