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페이스북이나, 다른 분들이 ‘예수님의 얼굴’이라고 보내는 것을 받습니다.
자연현상, 과일, 숲, 동물, 구름, 벽, 바위등으로 그것들이 표현되기도 합니다.
그것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말합니다. 예수 얼굴 자연현상은 형태가 없거나 모호한 시각적 자극에서 명확하고 식별할 수 있는 패턴을 추출하려는 심리, 또는 그러한 심리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 현상이고 정의하고 있는데, 쉽게 말하면 얼굴 착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사진은 2차 세계대전 때 한 중국인 사진사가 예수님을 묵상하다가 눈이 녹은 벌판을 찍었는데, 예수님의 형상으로 찍혔다는 사진일 것입니다.
출처가 모호한 요근래 찾아보기 힘든 사진이지만, 예전에는 그 사진을 통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것말고도 파레이돌리아 사진은 많습니다.
또 하나의 예는 토리노의 수의입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사망했을 당시 시신을 감쌌던 것으로 전해진 ‘토리노의 수의’를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들이 최첨단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얼굴을 구현한 합니다. 전문가들은 수의 앞·뒷면에 남아있는 피와 먼지, 물자국들로 예수의 인상을 추정해 얼굴을 살려내고, 예수님의 진짜 얼굴이라고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토리노의 수의는 진품 여부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하게 되고, 목사가 되면서, 그런 사진들을 더 이상 감명 깊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그림이고, 현재의 디지털 이미지를 통해서 얼마든 가짜로도 만들 수 있으며, 그 사진이 정말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얼굴과 증거들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래야 신앙심이 생기고, 천국 갈 수 있는 확신이 드는가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 사진들과 동영상은 제 마음의 신금을 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짜 예수님의 얼굴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진들은 바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의 사진입니다. 아기들부터 어린이 청년, 청장년, 노년을 아우르는 이들이 얼굴들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곳에서 예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직 성도의 얼굴에서 찾고, 말씀에서 찾습니다. 그들이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땀 흘리며 헌신하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울고, 슬퍼하는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찾아 냅니다.
우리 주님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어디서, 어떤 다른 이미지에서 더 찾을 이유가 저에게는 별로 없습니다.
무지개교회를 통해 역사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 성도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주님은 오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