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성경학교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는 연합으로 하다가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원로권사님의 간증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는데, 우리교회 원로권사님이신 이순애권사님의 나이는 95세이십니다. 제 외할머니이기도 하지요.
예배 시간에 이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 권사님들의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 볼 생각을 못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종도 위 신도라는 섬에서 태어나신 이 권사님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제의 강제징용에 가지 않기 위해서 15살 나이에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부녀를 나타내는) 쪽머리를 하게 되면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어린 시절 삼촌을 통해 교회에 갔던 이 권사님은 결혼 후에 시집살이를 하게됩니다. 부뚜막에서 부찌갱이를 특특치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데, 시아버지가 갑자기 “우리 집에 무당을 들어왔어!” 하고 소리치며 화를 내시더랍니다.
교회를 꼭 가고 싶었는데, 시아버지를 호통에 무서웠던 이 권사님은 기도하니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너가 어려우니 교회 오지 않아도 된다” 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부터 교회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 후로 5남매를 낳았습니다.
작은 섬은 한국전쟁도 비켜나갈 수 있었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은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바람이 나게 되어 딴집살림을 하게 홀로 5남매를 키우게 되었는데, 인천으로 나가서 막노동을 하며, 큰 아이(박인수 권사님, 어머니)와 함께 5남매를 키우게 되었습니
다.
그 때, 무릎 통증이 올라왔고, 도저히 걷는 것이 어려워지자, 그 때, 인천 방주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니 같이 가자라는 이웃의 권유에 가게 되었고, 아픈 무릎이 완치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최근까지 무릎 연골 주사를 맞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때, 다시 꿈을 꾸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왜 이제야 왔느냐!’ 라는 음성을 듣고 다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남편이 다 망가진 몸으로 돌아왔는데, 하나도 미움 마음이 들지 않고 불쌍한 마음만 들었다고 합니다. 몇 년 후 장례를 치루며 자녀들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우리는 아버지가 집을 나감으로 예수를 믿게 되어 기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온갖 죄를 지고 지옥에 가서 참 불쌍하다”
이 권사님은 마지막으로 성도들과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잘 믿으세요”
일제, 세계2차대전, 한국전쟁, 예수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 도시화, 산업화, 가부장제, 교회 부흥의 역사들이 녹아져 있는 이순애 권사님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 시대 믿음으로 살아오신 믿음의 선배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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