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교회 이야기
내가 걸림돌은 아닌가?
매일 성경 묵상을 하면서 금요일 설교를 하는데 토요일 본문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누가복음 6장 1~11절로, 안식일 준수에 대한 두 가지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며 이삭을 비벼 먹은 장면입니다. 두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이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 하였고, 결국 그들의 마음에는 분노가 가득 찼습니다.
이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다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이라 여겼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이 본래 생명을 살리는 날이며, 참된 안식은 바로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고린도후서 3장 13~18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34장 29~35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내용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이 빛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였고, 결국 모세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 수건이 필요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율법의 본래 정신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율법적 태도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새로운 율법에 매여서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생각하지만, 혹시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을 생각할 때 더 큰 고통이 다가왔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내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내가 성소의 휘장 역할이 되어 버려 성도들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것에 방해되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참 괴롭고 아팠습니다. 그리고, 미안하고 참 미안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는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돕는 것, 기도하는 것, 그리고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 서도록 돕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작아지고 주만 높아질 수 있도록…